1. 사실관계
피해자와 임대인(이하 ‘피고인’이라 함)은 2020. 9. 11.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임차목적물인 오피스텔을 인도하고,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임대차보증금 1억 2,000만 원을 반환하기로 하였는데, 피고인은 같은 날 피해자에게 ‘1일 이체한도가 5,000만 원이어서 오늘(금요일)에 5,000만 원을 반환하고, 나머지 임대차보증금 7,000만 원을 9. 14.(월요일)에 반환하겠다고 하면서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피해자는 새로 전입하는 주거지에 곧바로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하여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피고인 소유 오피스텔에 입주할 임차인이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이 약속한 2020. 9. 14.에 잔여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2020. 9. 11. 피고인으로부터 5,000만 원만 받환받은 채, 피고인에게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사실은 피고인에게 위와 같은 이체한도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피고인은 2020. 9. 11. 피고인 소유 오피스텔의 신규 임차인으로부터 1억 2500만 원의 임대차보증금을 받았음에도,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보낸 합계 7,0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을 다른 채무 변제에 사용하였다. 피고인은 이 법원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에게 잔여 임대차보증금 5,000만 원을 반환하지 않았다.
2. 대법원 판례[대법원 2024. 3. 12. 선고, 2023도17200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등]
가.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는 타인이 점유하는 타인의 재물과 재산상의 이익을 객체로 하는 범죄로서, 재물을 점유하면서 향유하는 사용ㆍ수익권은 재물과 전혀 별개의 재산상의 이익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재물에 대한 사용ㆍ수익권은 형법상 사기죄에서 보호하는 재산상의 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대법원 2012. 4. 12. 선고 2011도9399 판결 참조).
나. 원심은,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이체한도 제한이 없고 잔여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이전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고, 사기죄에 있어서 재산상의 이익은 계산적으로 산출할 수 있는 이익에 한정하지 아니하고 채무이행을 연기 받는 것 등도 재산상의 이익이 되므로, 피해자가 임차목적물인 오피스텔의 반환을 거절하여 계속 점유할 권리가 있음에도 피고인의 기망행위에 속아 피고인에게 점유를 이전한 것은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해자에 대한 사기 부분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다.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임차한 오피스텔을 점유하며 이를 사용ㆍ수익하다가 추후 나머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겠다는 피고인의 말에 속아 나머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않고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피고인에게 이전하였더라도 사기죄에서 재산상의 이익을 처분하였다고 볼 수 없어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해자에 대한 공소사실 중 점유권을 편취하였다는 사기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는 사기죄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3. 판례 비평
세입자인 피해자는 이체한도가 있어 이사 당일 전세금을 모두 이체할 수 없다는 임대인의 말을 믿고, 전세금 중 일부인 7,000만 원을 받고, 오피스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방법으로 임대인에게 오피스텔을 반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제1부는 2024. 3. 12. 이에 대해 임대인의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런 판단이 보편화된다면,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사기 피해자를 양산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시장경제체제는 거래 상대방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데, 대법원의 이런 판단은 시장경제체제에서 꼭 필요한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속아 근저당권등기를 말소한 경우 담보가치 상당액을 편취액으로 본 판례가 있습니다
[대법원 2006. 3. 24. 선고, 2006도208 판결,
타인을 기망하여 그 타인 명의의 근저당권을 말소한 자가 그로 인하여 취득하는 재산상 이익은 그 담보가치 상당액이고, 그 가액(이득액)은 원칙적으로 담보부동산의 시가 범위 내의 채권최고액 상당이라 할 것이며, 근저당권말소 당시 실제 채권액이 채권최고액에 미치지 아니하는 경우 근저당권말소 당시 실제 채권액이 한도가 된다(대법원 2000. 4. 25. 선고 2000도137 판결 참조).]
또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임대인에게 속아 임차인이 일시적으로 전출신고를 하여 우선변제권을 상실한 사건에서, 우선변제금 상당액을 편취액으로 판단한 사례도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2014. 10. 1. 선고 2014고단5785,
대출 갈아탈때까지만 임차인에게 전입신고를 다른 곳으로 해달라고 거짓말하여 보증금 6천만원 상당 우선변제권을 상실시키고 담보가치가 상승한 것을 기화로 추가 대출 받은 사안에서 우선변제권 상당의 손해를 가하고 같은 금액 상당의 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사기를 인정]
위와 같은 거래의 신뢰와 관련 판례를 종합하여 보면, 임차인의 대항력, 우선변제권도 사기죄 객체이고, 점유권 상실로 구성할 것이 아니라 우선변제금 상당의 손해와 재산상의 이익으로 구성한다면, 우선변제금 상당의 편취액을 재산상 이익으로 보아 사기죄를 인정함이 타당할 것입니다. 공판 검사는 파기 환송심에서 공소장 변경을 통하여 다시 한번 대법원에서 판단을 받아보기를 강력 촉구합니다.
2024. 4. 22.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세입자114)
센터장 이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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